친애는 먼저 '사랑할 만한 대상'을 살펴봐야 한다.
여기에서 모든 대상이 다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사랑할 만한 것'만이 사랑을 받는다.
'사랑할 만한 것'은 유익하고 즐겁고 좋은 것이다.
유익한 것은 '그것으로 인해 어떤 선 혹은 쾌락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유익 그 자체로
사랑할 만한 것은 선과 쾌락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럼,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선'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위한 선'인가?
이 둘은 간혹 충돌할 때가 있다. 쾌락에 있어서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을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또, '선'은 무조건 사랑할 만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각자 자기에게 선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선해 보이는 것을 사랑한다.
따라서 선한 것과 선해 보이는 것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무생물을 향해서는 '사랑, 친애'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그것은 무생물에게 선이 있다고 생각지 않고 또 바라지도 않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고 술을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우스꽝스럽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우리가 그를 위해 좋은 것을 바라고 그가 좋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상대에게 선을 원하고 있으나, 상대로부터 응답이 없을 경우에는 그저 선의를 가지고만 있다고 말한다.
선의는 서로 주고받고 서로를 인식할 때 친애가 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한 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좋고 유익한 사람이라고 인식되는 사람들'에게 선의를 가지며, 또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같은 감정을 갖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서로 선의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친구이다.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선의를 품고,
서로 상대에 대해 선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출처 :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정치학/시학
아리스토테렐스/손명학 옮김
'니코마코스 윤리학 ⦁ 정치학 ⦁ 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친애의 완성) (6) | 2024.09.27 |
---|---|
니코마코스의 윤리학( 선의 ) (8) | 2024.09.22 |
니코마코스의 윤리학 (친애에 대하여) (4) | 2024.09.12 |
니코마코스의 윤리학 ( 쾌락과 선 ) (14) | 2024.09.11 |
니코미코스의 윤리학 (7) | 2024.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