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력 없음과 유희
촉각과 미각으로 인해 생기는 쾌락, 고통, 욕저, 혐오에 대해서는 방종과 절제가 관계되어 진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겨내는 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지는 사람도 있고, 이겨내지 못하는 것을 이겨내는 사람도 있다.
이 가운데 쾌락에 관계하는 성품은 '자제력 없음과 자제력 있음'이며,
고통에 관계하는 '인내심 없음과 인내심이 있음'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중간에 있다.
쾌락에는 꼭 필요한 것도 있고, 꼭 필요하지 않은 것도 있다.
꼭 필요한 쾌락이라도 지나치면 필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모자람 역시 마찬가지다.
방종한 사람은 쾌락을 잘못 추구한다. 또 절대 뉘우침이 없고 고칠 수도 없다.
뉘우침이 없으면 고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간적인 사람은 절제하는 사람이다.
쾌락의 행위를 선택에 의해 하지 않는 사람들에는 쾌락 자체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하게 되는 경우와 욕구에서 생기는 고통을 피하려고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강한 욕구 때문에 추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보다는 욕구가 전혀 없거나 혹은 약한 욕구 뿐인데도 추악한 행동을 한 사람을 더 나쁘다고 한다.
화가 나서 남을 때리는 사람보다 노엽지도 않은데 남을 때리는 사람을 더 나쁘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어떤 정념에 사로잡힌 다면 어떤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정한 사람은 자제력이 없는 사람보다 나쁘다.
약한 분노일 때 때리는 것은 인내심이 없음이고, 강한 분노일 떄 때리는 것은 방종이라 하겠다.
'인내심이 있음'은 쾌락에 맞서 싸워 이긴 것이고,
'자제'는 쾌락을 이김으로써 생긴다.
이때 맞서 싸우는 것과 이기는 것은 다르다.
매를 맞지 않은 것이 승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제가 인내심이 있음보다 더 바람직하다.
사람들은 맞서 싸워 충분히 이겨내지 것을 이겨내지 못한다. 이는 인내심이 없고 나약한 사람이다.
이러한 행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가엾은 인간이라 생각지 않는다.
유전이나 질병에 관해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인내심이 없고 자제력이 없다거 하겠다.
유희를 좋아하는 사람은 방종하게 보이지만, 사실 그는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다.
유희는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것인데, 유희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이 지나친 것이다.
'성급함' 의 성질을 띤 '자제력이 없음은 임감하고 우울해 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많다.
성급함은 감정이 급해서, 자제력이 없음은 감정이 격렬해서 둘 다 그들의 상상력에 따르기 때문에
이치에 다가가는 것이 어렵다.
출처 :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정치학/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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