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욕망, 자제력
분노에 있어서 자제력이 없는 것이
욕망에 있어서 자제력 없는 것보다 덜 추하다.
분노는 어느 정도 이치에 귀를 기울이지만 잘못 알아듣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분노는 그 본성이 열렬하고 성급한 탓에, 듣기는 듣지만 해야 할 바를 듣지 않은 채 대뜸
복수를 한다. 즉, 이치나 상상으로 모욕을 당하거나 멸시를 당했다고 생각되면, 분노는 마땅히 싸워야 한다고 추론하고는 대뜸 화를 내고 덤빈다.
욕구는 머릿속 생각이나 감각이 쾌락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면 대뜸 덤벼들어 쾌락을 누린다.
분노는 어떤 의미에서 이치에 복종하지만, 욕정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욕정은 추하다.
분노에 있어서 자제력 없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이치에 정복당하는데, 욕정에 있어서 자제력 없는 사람은 욕정에 정복당하는 것이지 이치에 정복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성적인 욕구에 따르는 사람들이 더 쉽게 용서한다.
심지어 욕구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이라면, 비교적 용서받기가 더 쉽다.
분노나 성냄은 지나친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욕망, 즉 필수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욕망보다 더 본성적인 욕구이다.
나쁜 일은 계획적일수록 더욱 옳지 않다.
분노를 잘 표출하지 하는 사람은 계획적이지 않고, 분노 역시 그렇다.
분노는 다 드러낸다.
욕망에 대한 자제력이 없음이 분노에 대한 없음보다 더 옳지 못하고 추악하다.
자제하지 못하는 욕망은 무조건 자제력이 없음이며, 동시에 하나의 악덕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남을 모멸하면서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분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끼지만, 남을 모멸하는 사람은 오히려 쾌감을 느낀다.
분노에는 모멸감이 욕망에서 보다 없다.
짐승 같은 상태는 악덕보다 더 무섭기는 해도 악덕보다 더 나쁘지는 않다.
악한 사람은 짐승보다 천만 배나 더 악한 일을 한다.
출처 :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정치학/시학
아리스토테렐스/손명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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