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할 줄 아는 사람 (두 번째)
만일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이
강하고 나쁜 욕망들을 가지고 있을 때,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은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 것이며,
자제할 줄 아는 사람 역시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은
지나침이나 나쁜 욕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제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그런 욕망들이 있기 때문이다.
욕망이 유용한 경우에는,
그 욕망들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성격의 상태가
나쁘고, 따라서 지제는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닌 것으로 된다.
한편 그 욕망들이 약하고 나쁘지 않은 것이라면,
자제력이 그 욕망들에 맞선다고 해서 훌륭하다고 감탄할 필요가 없으며, 또 만인 그것들이 나쁘기는 해도 약한
경우에는 그것들에 맞선다고 해서 대단할 것이 없다.
자제력이 어떤 억측이나 모든 억측을
사람이 받아들이게 한다면, 그것은 좋지 못하다.
이것은 훌륭한 자제력이 없음이다.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설득하여 시킨 일을
지키지 않은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소피스트(궤변적 지식)적인 궤변이 곤란한 문제이다.
소피스트들은 상대방의 견해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역설적 결과를 들추어내는 추론을 전개하여 이에
성공함으로써 사람들의 찬양을 받고자 한다.
바로 그 추론은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다.
결론적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해서 그 결론에 머물기를
바라지 않지만, 논리를 풀 수 없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사유의 경우, 그 사유는 묶여 버리고 우리는 곤경에 빠지고 만다.
자제력이 없는 어리석음(사유의 막힘)이
덕이라고 하는 궤변적 주장이 나온다.
이런 경우의 사람은 자제력이 없어서 자신이
판단한 것이 반대되는 일을 하는데, 그가 자제력이
없어서 반대로 택한 나쁜 것은
사실 좋은 일이다. 그는 좋은 일을 한 것이다.
출처 :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정치학/시학
아리스토텔레스/손명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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