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와 정의는 같은 공동체 사이에서 존재한다.
'같은 배를 탄 사람'이나 전우를 친구라고 부른다.
어떠한 공동체에서도 자기와 더불어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친구라 한다.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적당한 교제의 한계는 곧 친애의 한계라 할 수 있다.
이런 속담이 있다.
' 친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공동의 재산이다.'
친애가 그 공동체 안에 있기 때문이다.
형제나 친구들과는 모든 것을 공공으로 소유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의 경우에는 제한된 사물들만을 공동 소유한다.
이것은 친밀한 정도의 차 때문에 차이가 생겨난다.
모든 친애 가운데에서도 어떤 것은 더 친밀하고
어떤 것은 덜 친밀하다.
온갖 정의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의무와 형제 사이에 있는 의무는 서로 다르고,
친구들과 동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의무 역시 같지 않다.
어린 여러 가지 관계에 있어 사람들에 대한 부정한 행위일수록
그 부정의 정도가 다르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부정한 행위에 대한
그 부정의 정도가 심하다.
자기 친구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는다면 이것은 아주 고약한
일이 된다. 또 자기 형제를 돕지 않는 것, 자신의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 것 역시
아주 옳지 못한 일이다.
정의에 대한 요구도 친밀의 정도나 친애의 정도에 따라 증가한다.
이것으로 보아 친애와 정의는 같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며 또
친애의 정도에 따라 정의도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공동체는 국가적인 공동체의 일부분으로 보이고,
부분적인 이익을 추구한다. 쾌락 때문에 생긴 공동체도 있다.
하지만 국가 공동체는 눈앞에 있는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우리 삶 전체를 위해서 이익이 되는 것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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