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욕 때문에 사랑을 원하는 경우에는, 사랑을 하기보다는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
그들을 아첨꾼이라 하기도 한다.
아첨꾼들은 상대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척하면서 자기가 사랑받는 이상으로 상대에게
사랑을 주는 척한다. 이때 사랑을 받는 것은 존경을 받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왜 명예를 좋아하는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을 명예가 있고 권위가 있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기를 원하고
그들에게서 자신들의 생각이 옳음을 인정받기를 원하고, 또 그들로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어떤 것을 얻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사람 또는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확증받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그러면서 얻게 된 명예의 기쁨은, 다른 이들의
평가에 힘을 얻어 자신의 선함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사랑받는 것은 존경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다. 또 친애가 바람직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친애는 사랑을 하는 쪽에 가깝다. 어머니가 자식에 대한 친애는 어떤 보상도 기대하지 않는다.
또 친구에 대한 친애적 사랑을 간직한 사람은 오래 지속적인 사랑을 갖는다.
동등하지 못한 사람들간의 친구에 대한 사랑은 어떨까?
사랑이 깃든 친애가 그들을 친구로 서로 동등한 관계를 이뤄낸다.
이들은 굳은 의리로 서로에게 비천한 요구도 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도 잘못된 일을 하지 않고 또 친구들도 그런 일들을 못하게 하는 것이
선한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악한 사람들은 진실함이 없고 심지어 자신에게조차 진실하지 못하다. 그들은 상대의
악함을 기뻐하여 잠깐 동안만 친구가 될 뿐이다.
유익한 친구나 유쾌한 친구들은 오래간다. 하지만 악한 사람들의 친구 관계는
서로 쾌락이나 이익을 주고 받을 동안만 친구가 된다.
유익함으로 인한 친애는 서로 반대되는 상황의 사람들을 가장 쉽게 친애로 만들 수 있다.
사람이란 자기에게 결여된 것을 구하고, 그 대신 다른 것을 상대에게 주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과 추한 사람도 이러한 유익함으로
친구가 된다. 서로 상반되는 것을 구하는 까닭은 다만 우연적인 것으로 사실상 중간적인
것이다. 그 중간적인 것은 선이다.
출처 : 니코마코스의 윤리학 / 정치학 /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 손명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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