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이란, 지니고 있으면 좋은 상태에 이르게 되고 또 그 좋은 상태의 기능을 잘 발휘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덕은 인간을 선한 인건으로 만드는, 인간 고유의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성품이어야 한다.
덕은 중용을 목표로 삼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감정과 행위에 관한 윤리적인 덕이다. 과도함과 부족함이 있는 것은, 어느 경우이든 좋은 것이 못 된다. 마땅한 때에, 마땅한 일에, 마땅한 사람에게, 마땅한 동기로, 마땅한 방식으로 이러한 것을 느끼는 것은 중용이면서 동시에 최선이며, 덕의 특색인 것이다. 행위에도 중간이 것이 있다.
덕은 감정과 행위에 모두 관계하며 과도함이나 부족함은 일종의 실패에 해당되고 그에 반하여 중간은 일종의 성공이다. 성공하는 것과 칭찬받는 것은 모두 덕의 특징이므로, 덕은 중용의 일종이다. 덕은 중용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피타고파스 학파
악은 무한정한 것에 속하고
선은 한정된 것에 속한다.
성공은
오직 한 가지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선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요,
악으로 가는 길은 여럿이다.
모든 감정과 모든 행위에 중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데 악의, 파렴치, 질투, 간음, 절도,살인. 같은 것들은 그 자체가 이미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난을 받는다. 부정한 행위나 비겁한 행위, 방탕한 행위에는 과도함과 부족함, 또는 중용을 기대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과도함이나 부족함에는 중용이 없고, 중용에는 과도함이나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중용을 알아보자.
공포와 태연함의 중요은 용기이다.
재산을 얻거나 주는 일의 중용은 호탕함이다.
명예와 불명예의 중용은 긍지이다.
노여움의 중용에는 온화함이다.
진리에 대해 중용을 지키는 사람을 진실한 사람이고 그 중용은 진실이라 하자.
재미를 주는 사람은 재치있는 사람이고 그 태도는 재치이다.
인생의 모든 일과 관련한 유쾌함이고 올바른 방식으로 유쾌한 사람은 친근한 사람이다. 그 중용은 친근함이다.
감정에서의 중용을 알아 보자.
수치심에 대해서 중용인 사람은 염치를 아는 사람이다.
시기와 악의 중용은 의분이다. 주위 사람들의 처지와 형편으로 자신의 고통과 쾌락을 관계한다.
행위에는 과도함, 부족함, 중용이 있다.
이 세 가지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다. 즉
과도함과 부족함은 모두 중용에 대립하는 동시에 저희들끼리도 대립하고 있다. 또 중용은 두 극단에 대립하고 있다.
균등한 것은 보다 작은 것보다는 크고, 보다 큰 것보다는 작다. 마찬가지로 감정이나 행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양 극단에 속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중간에 았는 사람들을
자기와 반대되는 쪽으로 밀어 붙이고 대립한다. 그 때의 대립이 가장 치열하다.중간으로부터 더 멀어져 있을수록 더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은 본성에 더 끌리게 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중간에 대해 더욱 반대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성실함보다는 방탕함으로 흐르기 쉽다. 이는 중용에 더욱 대립되는 것으로 본다.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무슨 일에 있어서나 그 중간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의 중심을 찾아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만
그것에 대해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중용을 잘 지키는 사람을 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그런 만큼 그런 사람은 찬양 받을 만하다.
저 거센 파도가 일으키는 물거품을 피하여
노를 저어라! 배를 저어라!
중용을 목표로 하는 칼립소가 충고했다.
먼저 중간에서 더울 멀고 반대되는 쪽에서부터 멀어져야 한다. 양 끝 가운데 하나는 더 그릇되기 쉬운 것이며, 다른 하나는 덜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용을 잘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우리는 어떤 일에 쏠리는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쾌락과 고통에서의 반대쪽으로 자신을 끌고 가야 한다.
쾌락을 버리면 잘못된 길에 빠지는 일이 보다 적어질 것이다. 따라서 중용에 도달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중용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다. 때때로 우리는 지나친 쪽으로, 또 어떤 때는 모자란 쪽으로 치우칠 때가 있다. 그 때에 상황에 따라 찬양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모든 일에 중용의 상태를 칭찬하지만, 극적인 상태에도 칭찬을 하거나 받기도 하기 때문에 그러한 상태도 필요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중용에 쉽게, 옳은 것에
갈 수 있다.
출처 니코마코스 윤리학/정치학/시학 동서문화사
'니코마코스 윤리학 ⦁ 정치학 ⦁ 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니코마코스 윤리학 (53) | 2024.09.11 |
---|---|
니코마코스 윤리학 (0) | 2024.09.11 |
니코마코스 윤리학 (0) | 2024.09.11 |
니코마코스 윤리학 (0) | 2024.09.11 |
니코마코스의 윤리학 (0) | 2024.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