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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이해력이 있는 사람`, `이해력이 탁월한 사람`과 `이해력`,`좋은 이해력`은
의견이나 학문적 인식과는 같은 것이 아니다.
만일 같다면 누구에게나 다 이해력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력은 영원불변하는 것들, 또 생성하는 모든 것들과 관계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의심이 가고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이해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관계하는 것은 실천적 지혜가 관계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해력과 실천적 지혜는 같은 것은 아니다.
실천적 지혜의 목적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된다는 규정하는 것이다.
실천적 지혜는 결국 명령을 내리는 것이고,
이해력은 단지 판단을 하는 것이다.
판단만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해력과 이해력의 탁월성은 같은 것이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과 이해력이 탁월한 사람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해력이 있다는 것은 실천적 지혜를 가진 것은 아니며, 실천적 지혜를 획득한 것이 아니다.
학문적 인식의 경우에 `배워서 안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한다.
의견의 경우에도 단지 실천적 지혜가 관계하는 것들에 한해서
남이 말하는 것을 `판단한다`거나 `훌륭하게 판단한다`는 의미에서 `이해한다`고 할 수 있다.
이때 훌륭하게 와 잘(올바르게)는 같은 의미이다.
`이해력`은 `배워서 안다`고 할 때에 `이해한다`라는 것이다.
`학문적 인식에 의해 스스로 판단하고 터득한다.`는 것이 `이해한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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