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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 정치학 ⦁ 시학

니코마코스의 윤리학

by emily_n_christy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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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성의 정의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이 정의롭지 못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얼마나 많이 해야 그 사람이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일까?

행위만을 가지고 결과를 얘기할 수는 없다. 다른 이유로 정의롭지 않은 행위를 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그 사람이 훔치기는 했으나 도둑은 아니고,
간음을 했으나 간통자가 아니라고 하겠다. 다른 모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만이 아니다. 허나 정치적으로는 옳은 것일 수도 있다.
정치적인 옳음은 자족적이기를 목표로 삼고 삶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구성원들,
즉 자유로운 동시에 비례적으로나 산술적으로 균등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성립된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는 정치적인 옳음은 없다.
다만 특별한 의미에서만 그 유사성을 띤 옳음이 있을 뿐이다.

정의는 법으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있고,
법의 심판은 옳음과 옳지 않음을 판정하는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는 정의롭지 못한 행위가 있다라고 하겠다. 물론
옳지 못한 행위를 하기도 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모두 정의롭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부정의는 다만,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들은
자신에게 너무 많이 분배하고,
무조건적으로
나쁜 것들은
자신에게 너무 적게 분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사람에 의해서 아닌 옳은 이치에 따라 지배가 이루어지게 해야만 한다.
지배자는 정의의 수호자이고, 균등의 수호자이기도 하다.
그 지배자 옳은 사람이라면 자기의 몫 이상의 것을 취하지 않을 것이고, 그에게는 어떤 보수를 주어야 한다.
명예와 특권이다.
허나 이런 것들로 만족하지 못한 지배자들은 비로소 참주가 된다.
스스로를 군주라 부른다.

주인적 정의와 가부장작인 정의는 국민들의 자유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사람들은 본디 자신에게 속해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의미에서의 정의롭지 못함이 있을 수 없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자식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이다. 옳지 못함은 있을 수도 없다라고 여긴다.
다만 정치적 정의와는 다르다.

하지만 자식보다는 오히려 아내에게 더 옳음이 존재되어야 한다.
여자는 집안을 다스리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치적 정의와는 다르다.


출처 :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정치학/시학
아리스토텔레스/손명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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