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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 정치학 ⦁ 시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by emily_n_christy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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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용감한 사람은 고통을 잘 견뎌내기 때문에, 용감함은 고통이 따를 때 더욱 찬양받아 마땅하다.

죽거나 부상당하는 것은 용감한 사람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고, 또 원하는 바도 아니지만, 고통을 견디는 것이 고귀한 일이기 때문에 이를 견뎌낸다.

힘들지만 고통을 견뎌내고 용감해 지는 것은 덕을 행하는 것이다. 덕을 행하는 것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절제


용기와 절제는 모두 비이성적인 부분에 속하는 덕이다.
절제는 쾌락에 관해 중용이다. 절제는 고통보다는 쾌락과
관계가 깊다.

쾌락은 정신적 쾌락과 육체적 쾌락으로 나뉜다.

정신적 쾌락은 명예, 학문을 좋아하는 것 등에서 비롯된다. 명예나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기쁨을 느낀다. 이런 사람은 정신의 기쁨만을 갖는다. 이들은 절제 있는 사람이라고도 하지 않고 방탕한 사람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육체적 쾌락에는 시각적 대상, 청각적 대상, 후각적 대상, 촉각적 대상, 미각적 대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시각적 대상, 색체나 모양이나 그림에서 기쁨을 맛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절제가 있다고도 방종하다고도 하지 않는다.

청각적 대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에게 방종하다고 하지 않으며, 알맞게 즐기는 사람을 절제 있는 사람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후각적 대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후각으로 느끼는 기쁨은 절제 또는 방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욕망의 대상을 떠올리며 기쁨을 떠올리는 것은 방종이라고 한다. 이것은 방종한 사람의 특징이다.

쾌락은 인간 뿐 아니라 동물도 누릴 수 있으며, 따라서 이런 쾌락은 동물적이며 노예적이라 본다. 촉각과 미각은 쾌락이다.
방종한 사람들이 기쁨을 맛보는 것은 언제나 촉각에서 오는 실제적인 향락이다. 이는 동물들과 가장 많은 공통점을 지닌 감각이다. 따라서 이것은 방종은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따듯한 물로 목욕을 함으로써 얻는 쾌락은 동물적 쾌락에 속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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