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소망은 목적에 관한 것이다.
소망은 사람에 따라 선으로 보이는 것이 다르고, 심지어는 서로 반대인 경우도 있다. 선한 사람에게는 참된 의미의 선이 소망의 대상이 되고, 악한 사람에게는 그들이 선이라고 믿는 것이 소망의 대상이 된다.
참된 의미에서 건강에 좋은 것들이 몸 건강에도 좋다. 하지만 겉보기에만 좋은 것들은 병든 몸에 단것과 같은 것이 된다.
선한 사람은 모든 일을 올바르게 판단하며, 참된 것만 눈에 띈다. 사람마다 성품이 다르기 때문에 고귀한 것과 유쾌한 것이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선한 사람은 모든 일에서
참된 것을
가장 잘 가려낼 줄 아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다른 사람들의
규범이며 척도가 된다.
책임
목적은 소망의 대상이며,
목적에 이르는 수단은 숙고하여 선택한다.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우리의 자유에 속하며, 그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행위를 하는 것도 우리의 자유에 속한다고 하겠다.
고귀한 행위나 추악한 행위를 하거나 안 하는 것이 우리의 자유이고, 선한 사람이니 악한 사람이니 하는 것이 어떤 행위를 하거나 안 하거나에 달려 있다면, 덕 있는 사람이나 악덕한 사람이 되는 것도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고, 우리 자유에 속해 있다고 하겠다.
악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무지에 의한 것이 아닌 한 징계 처벌을 받고, 고귀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칭송을 받고 그 행위를 장려하고 악한 행위를 억제하려고 한다.
무지에 대한 책임이 그 사람에게 있다고 여겨진다면, 무지 자체에 대해서도 처벌이 가해진다. 무지하지 않을 자유가 그들에게 있고, 그들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책임이고, 저마다 다른 성질의 활동을 함으로써 그에 맞는 성품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다.
불의를 행하면서 불의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거나
방탕한 행위를 하면서 방탕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불합리한 일인가
불의한 사람이나 방탕한 사람도 글런 시람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의적으로 불의해지고 방탕해진 것이며, 한 번 그렇게 된 이상은 소용없는 일이 된다.
육체적인 악덕에 대해서도 비난을 한다.
운동을 하지 않고 돌보지 않아서 볼품없어진 사람들, 폭음이나 방탕한 일로 스스로 눈이 멀어진 사람들은 비난을 받는다. 여러 가지 악덕 가운데 비난을 받는 것은 행위가가 모두 우리 자신의 책임하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사물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해서도 어느 정도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덕이 자의적인 것이라면 악덕 역시 자의적인 것이다.
덕은 중용이요, 성품이며, 그 중용과 성품에 의한 행위를 하고, 우리의 자유와 책임에 속해 있으며 자의적이며, 올바른 이치가 명하는 대로 따른다. 하지만 행위와 성품은 같은 모양으로 자의적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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